동유럽

[스크랩] 오스트리아 빈(비엔나) 쉔브룬 궁전 22방 설명서

기차니 2006. 11. 20. 08:41

아래 자료는 여행 책자에도 나와 있지 않는 귀한 자료로 오스트리아 여행에 활용하기 바랍니다

 

*아래 자료는 쿠쿠쿠 오스트리아에서 피나는 노력 끝에 한글로 번역 정리하였다.

쉔브룬 궁전에서 로맨틱한 투어는 당신을 몇 백년전의 역사 속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여행은 푸른색 난간의 계단 끝에 있는 육중한 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궁전 내부 관광은, 궁전 오른쪽 프란츠 요셉 황제와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황후의 방으로부터 시작된다. 들은 19세기 스타일의 장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 중앙 있는 화려한 방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진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부모, 소피 대공(오스트리아의 공주)프란츠 대공의 마지막으로 쉔브룬 궁전의 임페리얼 투어는 끝이 난다.

쉔브룬 궁전은 대제국의 저택과 축제의 장소로서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양식추구한 륭한 예술가들과 장인들이 창조해낸 거대한 름다움의 집합체이다.


- 쉔브룬 궁전 임페리얼 투어(22개의 방)에 관한 세부 설명 -

Billardzimmer

빌리아드 룸은 오디오실과 다른방들로 구성된 프란츠 요셉 황제의 방들 중 첫번째 방이다.

이러한 방들은 진품의 설비와 장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이 19세기 말경의 것들이다.

가구와 악세서리, 그리고 유품들은 세습군주 시대에 궁전에서의 일상생활 즉, 직업적인 면(왕으로서의 사회적 참여 등)과 가정적인 면 두가지 모두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후자(가정적인면) 역시 그당시 아주 인기 있는 스포츠였던 당구 치는 것을 포함하여 이 방과 관계된것들이 언급 되어져 있다.

일주일에 몇번 프란츠 요셉황제는 정부와 고위 군장성들을 만났는데, 장관들과 장군들 그리고 다른 장교들이 여기서 기다리면서 당구 경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3점의 큰 그림들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섭정에 관련된 것들이다. 가운데 있는 것은 1758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첫번째 의사진행을 묘사한 그림이다.

 
Nussholzzimmer - Audienzzimmer Kaiser Franz Josephs I

이 방은 섬세한 호두나무 판넬로 이루 져 있어 호도나무 방이라고 명명 되었다..

도금한 장식들과 콘솔 테이블들은 전형적인 로코코 스타일이며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시기에 우아한 꽃 문양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프란츠 요셉황제는 이방에서 군인, 재상, 관리들을 접견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제국의 어떠한 안건이라도 황제에게 제안 할수가 있었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이방에서 그의 재능과 수완들을 오랜시간 동안 유지시키며 발전해 갔다. 이곳에서는 프란츠 요셉 황제의 책상과 여러가지 물건들을 볼수가있다.

 
Arbeitszimmer Kaiser Franz Josephs I

프란츠 요셉 황제의 집무실은 접견실과는 달리 평범하고 다소 근대적인 장식과 가구가 배치 되어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그린 수많은 그림과 개인적인 사진들은 황제의 인간적인 면을 엿보이게 한다.

프란츠 요셉은 황제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이 책상에 앉아 서류들을 검토하고 간단한 아침식사 들곤 했다.

황제인 그는 스스로 나라의 첫번째 하인이라고 일컬으며 국정을 결정하는 많은 시간을 이 책상에서 보냈다.

두점의 초상화는 프란츠 요셉의 나이 33살때 그린것이고 다른하나는 그의 아내, 시시라는 애칭으로 불리워 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 이다.

오래전, 오스트리아의 유명배우인 로미 슈타이더에 의해 주연된 영화를 통해 엘리자베스 여왕의 일대기가 그려졌는데 영화의 내용은 그녀의 총명함과 독립적인 성품, 고귀한 천성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 등이었다.

 
Schlaf- und Sterbezimmer Kaiser Franz Josephs I

황제의 아침은 침실에서 시작되었고 엄격한 시간표 속에서 살았다.

4시에 일어나 찬물로 목욕을한후 기도대에서 무릅을 꿇고 기도를 하곤했다. 그는 철저한 카톨릭 신자였다.

철제 침대는 군주의 엄격한 성품과 검소한 습관을 엿볼수 있다. 그는 이 침대에서 86세의 나이로 1916년 세계 일차대전의 혼란이 한참일때에 사망했다.

그림들은 그가죽었을 때 침대를 보여주는것이다. 밖으로 통하는 문옆 수세식 변기는 영국식 시스템에 의해서 작동되는것이었다. 이런 시스템은 1899년에 도입되었다.

 
Terrassenkabinett West

서쪽 테라스실은 엘리자베스 왕비의 방으로 이어진다.

이곳에는 프랑스 예술가인 Pierre Benevaux에 의해 그려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막내딸 마리 앙뜨와네뜨 초상화가 있다.

그녀는 후에 프랑스의 여왕이 되어 마리아 요세파가 된다.

 
Stiegenkabinett der Kaiserin Elisabeth

이곳은 엘리자베스 왕비의 공부방으로 사용된 곳이다.

여기서 그녀는 수만은 편지를 썼으며 시뿐만 아니라 일기를 쓰곤 했다.

군주제가 끝날 때 까지 이방에는 1863년에 만들어진 여왕 전용 층계가 있었고 그 층계는 일층의 그녀 개인 방으로 다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오늘날 이 방들은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하게 존재 하지는않는데 이는 황후 개인의 취향에 의한것이었다.

이방에는 보라색 실크 벽장식들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개인적인 물건들을 소장하고 있다.

 
Toilettezimmer der Kaiserin Elisabeth

엘리자베스 황후의 일과는 그녀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뷰티케어, 다이어트 운동, 스포츠 등으로 꽉 짜여져 있었다.

그녀의 웅대한 헤어스타일을 위해서는 몇시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녀의 헤어드레서인 프란체스카 파이팔릭은 황비의 가장 측근이 되었고 때때로 대중적인 석상에까지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Gemeinsames Schlafzimmer von Kaiserin Elisabeth und Kaiser Franz Joseph I

이방은 황제와 황비의 부부침실로 사용 되었다.

1854년에 그들이 결혼할 즈음, 이방은 푸른색과 흰색의 실크 벽지로 되어있었으며 팰리산더 가구가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방은 결혼 첫해에만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엘리자베스 황후가 숨막히게 형식적인 궁정생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1870년대부터 그녀는 그녀 자신만의 독립적인 생활을 해 갔고 , 많은곳을 여행하면서 지냈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혼자 외롭게 지내는 날이 많았으나 그녀의 죽음 직전까지도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1898년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었다.

 
Salon der Kaiserin Elisabeth

황비의 응접실(리셉션룸)은 1854년 신 로코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창가 거울앞의 시계는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거울을 보면서 시간을 알수 있도록 시계 뒷면이 실제 시계와 반대로 되어있다.

이방에 있는 두장의 초상화는 특별한 흥미를 끈다. 18세기 파스텔풍의 초상화들은 제네바의 예술가인 리오타르드에 의해서 그려졌는데 그의 작품을 위해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특별 기금을 마련했었다.

그림들은 11살에 왕위에 오른 요셉뿐만 아니라 그의 여동생들도 보여준다. 화려한 사냥복을 입은 마리 앙뜨와네뜨의 초상화는 요셉 크란징어에 의해 그려졌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었던 그녀는 15세의 나이에 루이 16세가 되는 프랑스 황태자와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랑스왕 루이 15세는 오랜기간의 라이벌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Marie Antoinette Zimmer - Familienspeisezimmer

엘리자베스의 시대 이방은 식사를 위한 방으로 사용되었다.

테이블에는 가족의 식사를 위해 비엔나식 자기 그릇과 Mayerhofer & Klinkosch 에서 만든 비엔식의 왕궁 은식기뿐만 아니라 Lobmeyr & Co에서 만들어진 납성분을 포함하고 프리즘절단으로 만들어진 잔들이 놓여져 있다.

황제 가족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할때에는 왕실의 완전한 격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소 편안하게 식사를 했다.

황제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된 좌석 배치와 대화방식은 테이블을 가로지르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그당시 왕실의 법도에 따르면 한사람은 자신의 바로 옆사람과만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이 허용되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프랑스 요리를 먹었지만 가족 식사에선 비엔나식과 간단한 요리를 선호했다. 예를 들자면, 비너슈니첼, 소고기 굴라쉬, 양파를 곁들인 쇠고기, 찐 덤플링(푸딩?) 또는 카이저슈마렌(잘게 만든 오믈렛으로 건포도와 설탕에 절인 과일로 만들어진다.)

테이블 장식을 위한 꽃은 쉔부른에 있는 가든 어드미니스트레이션(garden administration) 에서 공급되어진다. 아잘레아(진달래과)와 히아신스 두종류의 꽃은 난초과의 아주 값진 종이었다.

1900년 왕궁 묘목장은 1.500종의 25.000 난을 소유했으며 그당시 유럽에서는 최고의 콜렉션이었다.

가운데 있는 그림은 엘리자베스 왕비가 루비와 다이아몬드 보석을 하고 은혼식을 할 당시의 그림이다.

이 방은 마리 앙뜨와네트와 그녀의 아이들이 있는 태퍼스트리(무늬를 넣은 양탄자)가 걸려져 있어 테퍼스트리라 불리기도 한다. 그 그림은 나폴레옹 3세가 프란츠 요셉 황제에게 선물로 주어졌으며 현재 합수부륵 왕가의 개인 소장품으로 되어있다.

 
Kinderzimmer

이방은 육아실로 알려져 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이들 초상화가 걸려져 있다.

그녀 아이들의 실제 방은 왕궁의 일층(지상층)과 4층에 있다.

마리 앙뜨와네뜨 사진 바로 밑에는 값진 Louis 책상이 있다. 이 책상은 1793년 프랑스 혁명때 까지 프랑스의 왕비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의 딸, 마리 앙뜨와네뜨의 유품으로 유일하게 지금까지 쉔부른에 남아 있는 것이다.

욕실로 통해 열려져 있는 왼쪽의 문은 1917년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제였던 찌타에 의해 만들어 졌다.

 
Fruehstueckskabinett

이 작은 방은 왕궁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황제의 가족들이 궁의 인테리어 장식들을 어떻게 했는지 보여주는 몇가지 예들중의 하나이다.

원형 모양의 벽장식에는 어플리케(실로 꿰메 붙인)를 한 자수품을 볼수 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어머니였던 엘리자베스 크리스틴에 의해 만들어진것이다.

 
Gelber Salon

노란색의 살롱이라 이름지어진 이방은 궁의 정원을 내려다 볼수 있는 방들의 시작점이다.

1770년대의 가구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뉴클래식 요소 뿐만 아니라 로코코 식의 오래된 형식들도 보여진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들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때에는 가구들을 경매 처분 하거나 궁의 하인들에게 줘버렸다.

다행이 이 의자들은 그당시의 희귀한 생존물들이다. 이방은사실주의 묘사로서 중산계급을 그려왔던 제네바의 예술가인 리오타르드가 그린 훌륭한 그림들로 주목받을만 하다. 때문에 마리아 테레지아 자식들의 다른 궁정 초상화와는 완전히 다른 것을 볼수있다..

 
Balkonzimmer

발코니 룸에 있는 그림들은 마리아 테레지아 궁의 화가였던 마틴 반 마이텐스에 의해서 그려졌으며 왕비의 자식들을 볼수있다.

그들 가운데 마리아 엘리자베스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가장 아름다운 딸이었는데 그러한 연유로 웅대한 결혼식을 할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천연두로 인한 흉터로 추하게 되었고 남편을 찾을 희망을 버려야만 했다.

공주를 위한 유일한 대안은 수녀원에 들어가는것이었다. 이 초상화는 그러한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공주는 수녀원의 수녀원장으로 살면서 그 직위에 걸맞는 웅장한 아파트에 살았다. 그녀는 어떤 방해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관심사를 추구할수 있엇다.

 
Spiegelzimmer

웅장한 흰색과 금색의 로코코 양식의 장식과 함께 크리스탈 거울이 이방의 이름을 있게 했다.

거울의방은 전형적인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품위있던 방의 전형적인 표본이다.

거울들은 서로가 반사되어 비춰지게 위치해 있는데 때문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복도처럼 보이는 상을 만들게 된다.

이방에서 모짜르트는그의 나이 6살때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앞에서 그의 첫번째 연주회를 가졌었다.

그의 뽐내기 좋아하는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이 연주회 이후 그녀의 무릎위에 뛰어 올라 그녀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얼굴에 키스했다고 한다.

 
Rosa-Zimmer

다음의 세 방은 예술가인 요셉 로자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는데 그는 방에 전시된 풍경화를 그린인물이다.

왼편의 첫번째 그림은 스위스 Aargau의 폐허의 이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것이다. : Habichtsburg(문헌상으론 hawk's castle), 후에 합스부륵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하게 된다.

가장 큰 로자의 방에는 헝가리 여왕으로서의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왕정 미술가인 마틴 폰 마이텐스의 작품이다.

20년이 되기도 전에 16명의 자녀를 두었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주 정열적인 여자였다. 그녀 아버지의 사후 그녀는 오스트리아 계승문제로 인한 혼란속에서 전유럽의 절반가량을 상대하며 왕위 계승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녀의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선출된후 그녀는 정부의 선장처럼 행동했다.

프란츠 슈테판 사후 그들의 첫째 아들인 요셉이 황제가 되었고 역사속적으로 개신론자 황제였던 요셉2세로 이어지게 되었다.

 
Laternenzimmerh

전기가 들어오기 전 궁전에는 이방에서는 초롱불을 켜는 사람들이 대기하곤 했다.

그들의 주된 업무는 어두워지면 황제가족이나 왕궁 일꾼들의 길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방은 요셉1세때의 대리석문 판넬이 주목할만하다.

 
Grosse Galerie

길이 40미터 폭10미터 이상의 그레이트 갤러리는 무도회장으로 사용 되기도 하고 리셉션, 연회와 같은 궁정기능을 잘 소화해 낼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 였다

높은 창문과 반대편의 벽에 있는 크리스탈 거울들은 전체적으로 금과 회반죽의 장식과 천장의 웅장한 로코코 양식의 인테리어는 현존하는 최고의 작품들이다.

1961년 소련의 후르시초프와 미국의 케네디가 정상 회담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Kleine Galerie

이곳은 주로 저녁 만찬이나 소규모의 연회에 사용되었던 방이다.

창밖에는 쉔브룬 궁전의 프랑스식 정원과 마리아테레지아가 프러시아전쟁에서 승리 기념으로 건립한 글로리에테가 보인다.

 
Chinesische Kabinette

프란츠 요셉 황제가 자신의 개인 방으로 사용했고 마리아테레지아는 비밀 회담을 하는 장소로 이곳을 이용했다.

이곳에서의 회담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귀머거리 시종을 고용했고 작은 계단으로 연결 되는 비밀 통로는 마리아테레지아의 정부 카우니츠 국방장관의 방과 연결 되어 그곳에서 밀회를 즐겼다고 한다.

 
Karussellzimmer

이곳은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 공식 행사전 대기실로 사용 하였던 곳으로 방 이름은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서 유래 되었다

그림은 프랑스와 바바리안인들을 보헤미아에서 물리친것을 나타내고 마리아테레지아의 승마학교 축사 장면과 마리아 테레지아에게는 중요한 이벤트인 슈테판 기사 임명 장면을 그린것이다.

 
Zeremoniensaal

이 방에 걸려있는 5개의 그림들은 황실의 매우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했다.

1760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 요셉의 프랑스 보르봉가 공주와의 결혼식, 보르봉의 공주 이사벨라의 빈 입성 장면, 오그스틴 교회(Augustinerkirche)에서 열린 결혼식과 리터홀(Rittersaal)에서 열린 결혼식 후의 저녁 식사 장면, 유럽의 퍼스트 레이디를 나타내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 속에는 모짜르트와 그의 아버지도 묘사 되어 있다(투명 유리로 표시 되어 있다)

 

자료제공:쿠쿠쿠 오스트리아 http://www.cucucu.com 오스트리아 정보 No.1 사이트
자료제공:비엔나 워킹투어
http://www.viennawalking.co.kr 오스트리아 No.1 가이드 투어

출처 : 오스트리아 블로그
글쓴이 : 쿠쿠쿠 비엔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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