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참역사

[스크랩] 소위,왜구 머리형은 초원세력 머리형/일본 응신천황은 백제 근구수대왕이다?

기차니 2011. 5. 8. 10:40

 

[조양에서 일본까지 모용선비족의 이동]소위,'왜구'머리모양은 초원세력 머리문화









 



모용선비족(전연):요양=>경주.김해=>일본열도


요서지역 요양의 모용선비족 무덤 -4-5세기 김해.경주.일본열도의 말철갑과 동일한 말철갑 출토


 

4-5세기 경주.김해.일본열도 적석목곽분의 주인이 모용선비족임이 드러나는 고고학적 증거다.

고구려 고국원왕 시절 모용선비족은 요서지역 요양을 중심으로 전연을 개국하여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전연은 이후 내부권력내분으로 결국 고구려 왕족 출신의 고운(高雲)왕이 되어 고구려 제후국으로 전락, 고구려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북위에게 망하고 말았다.

모용선비족의 나라는 고구려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움을 안겨준 전연이다. 전연은 지나대륙을 정벌하기 위해 고구려를 먼저 공격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의 전략전략이 빚나가는 바람에 고국원왕은 아버지의 시신을 도굴당하고 태후와 왕비를 인질로 잡히는 수모를 당했다. 전연의 왕 모용황의 동생이 거느리는 모용선비족은 북부전선에서  고구려에게 패하고 사분오열되어 동해안을 타고 경주.김해지역으로 들어와 김알지 흉노세력과 연합하여 신라를 개국하고, 신라권력에서 소외된 세력은 가야지배세력이 된 후 일본열도까지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개국세력이 모용선비족이였음이 드러난 고고학적 발견이였다고 할 수 있다. 초원문화를 농경문화로 바꾸고 법과 제도를 개혁한 신라 법흥왕의 본래 성과 이름은 모진이다.(기록문헌:삼국사기.만주원류고.양서) 법흥왕은 모진에서 김원종으로 성과 이름을 바꾸었다. 고구려를 의식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신라권력에 소외된 모용선비족이 가야지배세력이 되어 김해지역에 적석목곽분을 남겼고, 신라에 망한 가야의 모용선비족이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기마문화를 남겼던 것이다.

변하기 어려운 무덤양식을 보면 돌이 많은 산악지대에서 일어난 고구려는 적석총(피라미드)이고, 한반도 마한을 통합하고 계승한 백제는 마한의 무덤양식인 전방후원분(백제계 일본왕들의 무덤이 거대한 전방후원분)이다.그러나, 신라무덤은 전형적인 유라시아 초원세력의 무덤인 적석목곽분이다.

아래 자료는 KBS에서 방영했던 <몽골리안루트>의 화면자료들이다.



 



요양=>경주.김해=>일본열도에서 출토된 4-5세기 모용선비족의 말철갑 유물


 

지나대륙에 세운 선비족들의 나라들=5호16국 시대



단군조선의 갈래인 초원세력은 위생을 목적으로 머리를 깎았다.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녔던 어릴적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머리를 한 가닥으로 따고 나머지는 머리를 모두 빡빡 깎았다는 지나문헌의 기록내용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기마문화를 만든 모용선비족의 머리문화
보통 우리가 왜구로 부르는 일본인들의 머리모양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란 나라는 이렇게 일본열도로 이주한 한반도토착민들(마한)과
고구려.백제.신라.가야세력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나라다.
그래서 일본의 각 지역문화와 색이 다른 것이다.



▲ 4세기 이후 경주지역의 적석목곽분(무덤주인은 고구려군에 쫓겨 들어온 선비족)
2세기 흉노족을 제압하고 초원의 주인이 된 선비족은 흉노족을 흡수하고 있었다.


 

신라 김씨 왕조는 나라는 선비족 모용황의 나라 전연이 고구려를 침략할 당시 기마부대 1만여명이 북부전선에서 고구려 4만 대군에 쫓겨 동해안을 타고 지역으로 들어온 북방 선비족이 지나대륙에서 흉노계 신나라가 망한 후에 멸족을 피하여 산동지역에 배를 타고 한반도동남부지역으로 이주해 온 흉노계 김알지세력과 연합하여 세운 왕조다./윤복현

[참고도서] 아래 도서에 상세히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












도서명 :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  
저자 : 장한식
출판사 : 풀빛 





 

<신라 김씨 왕족은 모용선비족> 국사교과서 수정해야..

 

 

백제 근구수대왕은 일본통치한 천황이다?
한반도.일본열도.지나대륙에서 위세떨친 정복군주 근구수대왕
부여에서 나온 백제의 국시는 역시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의 국시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의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다물(담로)다. 그리고 법령을 공포하고 관제를 정비하여 중앙집권국가를 실현한 고이왕 이후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시기부..윤복현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윤복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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