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스크랩] 프랑스의 야경 (꽁꼬르드 광장 & 샹젤리제 거리)

기차니 2007. 9. 30. 09:08

 

꽁꼬르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은 한 눈에 연결지어 진다.

 

꽁꼬르드 광장 역사적인 큰 사건들이  있었다.

꽁꼬르드 광장은 1757년~1779년(22년간) 쟉크 앙쥬 가브리엘의 설계를 기초로 건축되어 루이 15세에게 바쳤는데,

프랑스 혁명(1789년)당시 이곳에 단두대가 설치되어 1,300 여명이 목숨을 잃은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루이 14세에 의해

베르사이유 궁전을 거대하게 지으면서 민심이 피폐해져 혁명이 일어났고,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루이 16세는

1793.1.21 재판 과정을 거쳐 이곳에 끌려나와 왕비와 함께 목이 잘려 처형당했다.

우유부단했던 그는 마지막까지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 내 목을 자를 때 피가 시민들 위에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을 남겼단다. 결국 꽁꼬르드 광장은 혁명광장인 셈이다. 꽁꼬르드(영어식 발음 '콩코드')란 화합이라는 의미.

 

'콩코르드 광장'에서 보이는 우측의 금색 불빛 건물이 '앵벌리드'기념관(전쟁기념관)이다.

가로등과 기념물 등 곳곳에 금박의 장식들을 해 한층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위에 보이는 뾰족한 탑 모양이 오베리스크 (Obelisk)이다.  사진에 보이시는 김-김 커플께서 영원히 행복하시라 ~~

 

이것은 우리나라 고인돌 처럼 거석문화에 속한단다. 거석(巨石)을 숭배하는 만물숭배(Animism)사상에서 비롯된 문화로서

나폴레옹이 이집트 침공시 갖고온 것이란다. 남의 유물을 훔쳐다 자기네 마당에 버젓이 세워 둔 격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시 불교 석조 문화(특히 석등이나 석탑)를 훔쳐다 그네들의 정원을 꾸민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당시 이집트 피라미드는 너무 거대해서 해체해 오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러한 문화는 중동의 각종 석조물, 영국의

스톤헨지(Stone Henge), 프랑스의 까르낙(Cargnac)의 열석(列石) 등을 들 수 있는데 인간은 옛부터 거석의 영험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이 좌우된다는 의식에서 거석숭배 사상이 생겨난 예란다.

위 사진에 있는 것은  테베 강변의 람세스 2세 신전에서 가져온 오베리스크라고 하니 무려 3200년이 넘은 것으로서

높이가 23m나 되는 분홍색 화강암이다. 

아래 사진은  대양의 분수 라고 한다.  일어서는 바다라는 의미의 분수라고 하는데 저녁 때가 되니 분수와 조명이 아름다웠다.

 

위의 사진이 바로 앵벌리드 기념관

1821년5월5일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52세로 외롭게 죽은 나폴레옹이 '유골을 세느강변에 묻되,

묘비에는 이름도 없이 '여기에 눕다'로 새겨달라 했단다. 그래서 1840년  나폴레옹 3세인 그의 조카가

유해를 운구, 이곳에 안장했단다. 직접 들어가보지 못했다.

 

샹젤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Elysees)

 

그리스 신화에서 낙원이라는 의미의 엘리제를 따서 샹젤리제(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샹젤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Elysee)는 파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길이 2.2km의 대로이다. 개선문을 기준으로 뻗어 있는 12개의 방사형 길 중에 정면으로 있는 가장 큰 길이의 거리이다. 양쪽에 이름난 상점, 식당, 영화관, 여행사가 즐비하며 노천카페가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남들이 다 잠든 저녁에 이 거리에 나와 노천카페에서 파는 맥주를 사 들고 에펠탑 밑에서 마셨던 일이 멋진 추억이 되었다. 이 거리의 특색중의 하나는 가로수(프라타너스와

마로니에 나무)의 윗동을 일정하게 잘라 놓았다. 이것도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저 도로끝 개선문 - 오베리스크 - 샹젤리제 도로와 일직선으로 존재하며,  

까루젤 개선문(루브르 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에서 지근 거리에 있는 규모가 좀 작은 개선문) - 루브르 박물관까지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이집트 문화를 여기서 헤아려 봄 직 하다. 피라미드를 뜯어오지는 못했지만 그 의미를 지닌 형상을 만들어 두었다고

해석해 보고 싶다. 그럴 줄 알았으면 기를 써서라도 개선문 옥상에 올라 사진을 찍는건데 놓쳤다. 여행일정도 촉박했지만...

위 사진상에도 보이는 것 처럼 거리 바닥은 이탈리아에서와 같이 손바닥 보다 작은 크기의 거무스름한 돌을 깔아 다져졌기에

우리네 보도블록(주로 연말이나 정권 말기에 새로 교체함)과 흡사한데 수명은 수천년을 견딜 성 싶어 부러웠다.
 

꽁꼬르드 광장에서 도보로 샹젤리제 거리(2.2Km), 즉 개선문을 향해 가는 우측도로변에서 오베리스크쪽으로 돌아보며 찍은 장면.

 

  

샹젤리제 거리의 불빛만 크로즈 업 해봤다. 

 

위 사진상의 좌측에 루이비똥을 비롯 명품의 거리로도 알려져 있다.

 

루이비똥에 얽힌 절대로 웃지 못할 실화 한토막.

내가 잘 아는 젊고 유능한 청년이 처녀를 만난지 한달만에 쾌속으로 결혼식을 올렸는데, 오래 가지 못했다.

그들이 달린 속도만큼 벼랑 아래로 떨어진 격이다.

명품족인 그 처녀, 경남 하동에서 부친이 초등학교 교장 딸네였다. 가문에 대한 선입견으로 덜컹 결혼 날짜를 잡았는데

어느날 다소곳이 루이비똥 핸드백을 사 달라고 했단다. 이 청년 "그러지뭐~"해놓고, 가격을 물어보니 그 처녀 왈 ~

700만원인데 아는 친구를 통해 사면 400만원 정도면 된다고 했다는 것. 이 청년 가슴이 덜컹 "그렇게 비싼 가방이 꼭

필요하냐 ?"며 부정적인 의중을 내비쳤더니... 그때부터 "나 결혼해도 부부관계 안 할꺼야. 혼인신고도...." .

이 청년,  처녀가 토라져서 그러는 줄 알고 식을 올린 후에 사이판으로 갔단다.

그런데 그 처녀는 첫날밤부터 슬쩍 흘린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더란다. 미치고 펄쩍 뛴 그 총각. 그후 그녀는 가출.

나를 찾아와 인생상담하길레 .... "당장 때려 치워라. 서둘렀던 인생, 연습이라 치고 더 불행하기 전에 맘 돌려" 했다.

이 다음에 참한 처녀 생기면 나한테 맨 먼저 선을 뵈겠다며. 얼마 전에 있었던 실화지만 나도 충격을 받은지라 여기다

글로 남겨본다. 인도의 성인 간디의 명언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이 다 있지만 탐욕스런 한 인간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다". 무소유의 길을 가시는 법정 스님이 내게도 존경의 대상이다.

속이 빈 명품족을 경계한다. 차라리 짝퉁으로 대리만족이나 하라면 지극히 내 방식일까 ??!! 

외모 따위는 수준 낮은 헛건방이요, 빈 껍질에 불과할 것이다.

 

저 화려한 불빛도 내겐 환상에 불과하다. 그져 내 수준 만큼만 눈에, 입에, 가슴에 담으면 그만일 것이다.

나의 원래 촌모습대로 돌아가고파 내 머리 대신 카메라를 흔들어버렸다.

 

 

'샹제리제' 샹숑 가사

 

 

저는 거리를 거닐었어요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고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 누군가는 바로 당신이었죠

저는 당신에게 아무 말이나 했어요

당신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말하는 것으로 충분했어요

 

샹젤리제에는

샹젤리제에는

태양이 빛날 때나 비가 내릴 때나

한낮이든 한밤중이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있어요

샹젤리제에는요

 

당신은 제게 말했어요

어느 지하 카페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타만 치고 사는 괴짜들과 약속이 있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전 당신을 따라가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지만

우리가 서로 입 맞춘다는 것은 생각 조차 못 했어요

 

샹젤리제에서는

어느 밤에 모르던 두 사람도

오늘 아침 거리에서는

기나긴 밤을 지새운, 완전히 사랑에 도취된 연인이 된답니다

Etoile 광장에서 Concorde 광장까지

오케스트라와 수많은 현악기들에 맞추어

동이 틀 무렵의 온갖 새들은 사랑을 노래하지요

샹젤리제에서는...

 

                                                                    촬영&정리/동천 이춘우

                                                                    블로그  : http://blog.daum.net/cwlee0216/13000210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겨울철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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