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스크랩] 내몽고 여행 - 5 [왕소군 릉. 무량사.장군 아서별장]

기차니 2007. 8. 27. 12:59
중국 4대 미녀로
한(漢) 원제(元帝) 경녕(竟寧) 원년(BC 33), 남흉노(南匈奴)의 선우(單于)
호한야(呼韓邪, 재위 BC 58∼ BC 31)가 원제를 알현하기 위해 장안(長安)으로 왔을때
호안야를 따라 가게되며.

왕소군은 흉노에서 어진 마음으로 그곳 여인들에게 길쌈하는 방법 등을 가르쳤고 한(漢)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에 힘써 그 후 80여 년 동안 흉노와 한과의 접전은 없었다고 한다.

왕소군이 죽은 후 그 시신은 대흑하(大黑河) 남쪽 기슭에 묻혔으며, 지금도 그 묘지는 내몽고
후허호트시(呼和浩特市) 남쪽 9km 지점에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가을에 접어든 이후 북방의 초목이 모두 누렇게 시들어도
오직 왕소군 무덤의 풀만은 푸름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청총(靑 )"이라 하였다고 한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

왕소군이 漢 을 떠나면서 서글픈 마음에서 지은 詩 이다.


한(漢) 원제(元帝) 건소(建昭) 원년, 전국에 후궁을 모집한다는 조서가 내렸는데, 전국 각지에서 선발되어
입궁한 궁녀들은 그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이때 왕소군도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후궁으로 선발되었으나.


정식 후궁이 되지 못하고 남흉노 호얀야를 따라 가게되고. 그곳 백성들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을 아끼지 않고.
또 漢과의 전쟁도 없이 태평 성대를 이룰수 있는 공로가 커서


흠모하는 백성들이 많았으며 .왕소군의 무덤을 참배 하는 사람들이 흙 한줌식 들고와서 보탠것이
직경 7m. 높이가 25m.의 봉분이 되엇다는 전설이 있다.




無量寺




무량사 뜰에 있는 과일 나무. 한나무에 빨간색 연두색 두가지 색의 열매가 달려 있다. 가이드에게 물어 본다는것이 깜박....


청나라 무관들과 서태후가 살았던 장군 아서별장.






장군의 침실.



女人花 : 매염방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해당화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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