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나톨리아의 역사
이지방은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민족이동의 통로이자 식민활동의 중심 무대 였으므로 예로부터 갖가지 문명이 꽃 피웠다. 아나톨리아는 수많은 문명이 교차하면서 세계의 중심무대로로 발전한 지역이다. 특별 동서 사이뿐 아니라 남북 사이의 교량적 역활을 하였기 때문에 농업과 축산이 발달하여 식량과 육류공급이 원활하였고, 각종 견고한 석재나 광물이 생산되어 생활도구나 무기의 생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이러한 여건에 힘입어 이 지역에서는 일찌기 수렵으로 부터 정착된 농경사회로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B.C 1900~1200년에는 앙카라 동북 지역을 중심으로 히타이트 제국이 번성 하였다. 히타이트는 성경에서 헷족속으로 알려진 민족이다. 이들은 B.C2000년대 초 아나톨리아 지역을 최초로 통일 하였다. B.C 1280년경에는 당시의 대 제국이었던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세력을 다툴만큼 강대국을 이루었지만 B.C1200년대에 이르러 쇠퇴하였다. 이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철기를 사용하였고 기마전술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타이트 제국이 쇠퇴하자 그대신 서부에서 브리지아 왕국이 일어 났으며 B.C 900년대에는 동부에서 우라르투 왕국이 일어났고, B.C 700년대에는 리디아 왕국이 등장하였다.
사데에 수도를 두고 있었던 리디아 왕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주조화폐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B.C546년 아르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이 침입한후 에게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아나톨리아 반도가 페르샤의 지배에 들어갔다. 이러한 페르샤 제국의 통치로 아나톨리아는 세계 패권의 중심지로 부각하게 되었다.
그후 B.C 334년 알렉산더가 침입하면서 아나톨리아는 헬레니즘 세계에 편입 되었으며, 그이후 아나톨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많은 유적들은 당시 헬레니즘 문화가 번성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알렉산더가 죽은 뒤에는 그의 후계자중 하나인 셀루커스가 세운 왕국에 소속되었으나 폰투스, 페르가몬 등과 같은 작은 독립국이 각지에 자립하기도 하였다.
BC133년 이 지역은 로마의 동방주가 되었고 AD330년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쟌티움(현재의 이스탄불)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비쟌틴 문화가 발달하였다. 콘스탄틴은 비쟌티움을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하여 전 로마제국의 중심지로 삼았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박해 받았던 종교에서 로마의 국교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교회의 유적들은 이 시대 번성 하였던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쟌틴제국은 아랍권과 서방세계의 세력확장으로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071년 셀죽투르크 제국에 의한 비쟌틴제국의 몰락으로 이지역은 이슬람 세계의 무대로 바뀌는 전기가 되었고, 1300년대 말 오스만 터키가 세워지자 아나톨리아는 오스만제국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지속되었던 오스만 터키의 지배는 무스타파 케말파사 장군에 의하여 터키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가 1923년 10월 29일에 터키공화국을 건국하여 평화와 안정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투철한 근대화를 실현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분은 평생 국가를 위하여 몸을 희생하였고 독신으로 살다가 서거한 분이다.
약 6세기 동안 중동과 동유럽을 지배하였던 오스만제국에서는 황제의 "울레마"라는 고위 종교관리 집단이 국가의 중대한 결정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후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입헌체재를 요구하는 지성인들과 소장파 군부세력으로 구성된 "청년터키당"이 조직적인 정치활동을 벌임으로서, 1908년 압둘하미드 2세는 입헌적 통치를 선언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오스만제국을 이상적으로 통치하고자 노력했던 청년 터키당의 원대한 포부는 수포로 돌아갔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터키는 연합국에 의해 아나톨리아 반도가 분할 점령되는 불행을 맞게 되었는데, 1919년부터 1923년까지의 구국전쟁에서 무스타파 케말이 크게 승리함으로서, 1923년 10월 29일 터키공화국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2. 터키 민족의 역사외 소개
터키공화국의 과거는 크게 터키 민족의 이동역사와 터키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역사로 나뉜다. 기록상 터키의 역사는 기원전 2000년경 중앙아시아의 동북부에서 시작된다. 터키족들은 중앙아시 동북부에서 시작된다. 터키족들은 중앙아시아 동북부에서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여 오면서 16개 군주국들을 이룩하였다. 터키인들이 현재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하게 된것은 AD10~11세기 경이었다.
터키민족이 아나톨리아 반도에 처음으로 이룩한 왕국은 셀축제국(AD10세기)이고, 그다음에 이룩한 오토만제국(1281~1922년)은 술탄 메르멧이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정복함으로서 그 위세를 더욱 높히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현재의 아랍 지역은 물론 비엔나 이남 유고, 흑해북방등 동부 유럽에 까지 뻗치는 세계적인 대제국을 이룩하여 당시 서구등 주변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고, 또 많은 유학생들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막강하던 오토만 제국의 국력도 17세기 이후부터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시 오토만 제국의 국력도 17세기 이후부터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세계대전시 오토만 제국은 패전국인 독일측에 가담하여 연합국측의 세브르조약(1920. 8)으로 아나톨리아고원의 일부만을 차지하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터키민족의 국부로 일컬어지는 무수타파 케말파샤가 1920년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연합국측에 의해 분열된 조국 및 터키인의 손상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실지 회복전쟁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새로운 터키 민족주의를 탄생 시켰다.
그후 1923년 연합국측과 로잔협정을 체결하여 오토만 제국을 소멸하고 1923년에 현재의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터키민족은 역사적으로 우리민족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던 민족으로 광산에서 철로 무기를 만들고 유목생횔을 하면서 중앙아시아를 누비고 다니던 기마민족 이었다. 그들은 유목과 말을 타고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면서 여러민족과 혼합되었고 특히 몽고인과 한국민족의 원조상인 맥 족속과도 혼혈 되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중앙아시로 쳐들어온 압바스 회교왕조의 회유와 세금에 대한 강한 압력으로 회교를 받아드리게 되었다. 회교는 그들이 믿어오던 유일신의 개념과 일치했고 정복을 좋아하는 터키인들의 성향에 맞았다. 그들은 회교만 순수하게 믿은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조상 대대로 믿어오던 샤머니즘, 천신사상과 에니미즘(정령숭배)을 회교에 혼합하여 회교신비주의를 만들었다. 이들은 회교종교의 확장을 목적으로 영토를 확장시켜 오스만제국을 건설하였다. 한때 오스만 제국은 북아프리카, 중동, 동유럽에 걸쳐 지배하였다. 오스만제국의 왕들의 타락과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로 몰락해가는 오스만 제국에 비해 유럽은 종교개혁과 산업혁명과 과학문명의 발달로인해 개발된 신무기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결국 세계1차대전의 마지막 분열로 인해 오스만 왕조는 몰락하고 1923년 케말 아타투르크를 통해 공화국이 탄생 되었던 것이다. 그후 터키 공화국은 회교주의 노선을 버리고 서구화를 지향 하였다. 그러나 아타투르크가 죽고난후 다시 회교세력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터키는 총리 중심의 내각책임제와 내각을 견제할 수 있는 실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제가 병행하고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이다. 550명으로 구성되는 국회는 단원제이며, 국회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각료회의는 총리및 총리가 지명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장관 및 각급 부서의 장관들로 구성된다. 주요 정당으로는 민주좌익당,국가행동당, 조국당, 미덕당, 정도당, 공화인민당 등이 있다.
터키의 정치적 특징중의 하나는 군부에 의한구테타를 들수 있다.
또한 사실상 편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세력으로 부터 이슬람원리주의 까지 다양한 정치적 이념을 가진 정당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모자이크가 터키의 예술의 큰 특징이듯이 이러한 다양한 색깔을 가진 집단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0년 조사에 의하면 터키의 공식적 인구는 6,500만명 정도이다. 그러나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터키인 전체의 수는 약 2억명에 이르고 있다.
터키인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독일, 불가리아, 이란 및 중동과 발칸 지역에도 분포하고 있다. 터키 인구의 41%가 농촌지역에 살고 있으며, 주요도시의 인구는 이스탄불 920만명, 수도 앙카라에 350만명, 이즈미르(써머나) 310만명, 아다나(다소 근처) 200만명, 안탈랴 150만명, 부루사에 160만명이 살고 있다.
터키의 언어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며 핀란드어와 헝가리어와도 유사하다. 인구의 15%가 쿠르드인 관계로 동부지역에서 쿠르드어를 쓰기도 하나 터키의 공식언어는 아니다. 알타이어중 상당히 부드러워 마치 불어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오랜 역사적 전통으로 아랍어와 페르샤어에서도 차용도 많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몇몇 단어는 똑같거나 유사한 말도 있다. 대도시에서는영어와 기타 유럽언어들을 사용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1923년 터키공화국이 선포되면서 부터 문자개혁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되었는데 무스타파 케말을 중심으로한 개혁주의 정권이 문자개혁안을 신속히 마련 1928년 11월 3일에 의회에서 문자혁명의 노력을 통하여 문맹률을 현저히 감소 시켰으며 터키인들에게 미래지향적 사고 및 발전방향을 제시하였다. 아타트르크의 문자 개혁에 의하여 1928년부터 터키어는 알파벳 문자로 표기되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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