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출신의 톱스타 리샹란과 [야래향]
리샹란은 중국 가요사에서도 단연 독특한 인물이다. 한동안 그녀는 중국인으로 행세했고, 많은 중국인의 심성 속에 모국의 가수로 여겨졌었다. 그렇지만 만주국 시절 일제의 중국 침략을 미화한 노래를 부른 경력 때문에 그녀가 1940년대에 동아시아 각국에서 히트시킨 《달맞이꽃(夜來香)》조차, 오랫동안 대륙에서는 금지되었었다. 그런 연유로 인해 이 노래는 우리에게도 떵리쥔(鄧麗君)이 70년대말에 리바이벌 한 곡으로 더 알려져 있다. 리샹란의 본명은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 그녀는 분명 일본인이었다. 그녀는 1920년 僞滿州國 奉天(지금의 선양瀋陽) 교외에서 남만주 철도국에 근무하는 일본인의 딸로 태어났다. 리샹란(李香蘭)은 아버지의 중국인 친구가 그녀에게 지어준 중국식 이름이었다. 13세때 폐병을 앓은 그녀는 폐를 강화시키는 노력으로 성악을 시작한다. 그녀의 백러시아 친구가 소개해준 이탈리아 선생은 그녀에게 소프라노 발성법을 가르쳤다. 이 여선생의 발표회날 함께 노래를 부른 그녀를 봉천 방송국의 직원이 눈여겨 보았고, 그런 인연으로 그녀는 [만주신가곡]이란 프로에서 중국 민요를 부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북경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중국인의 삶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동시에 한편으로 봉천에서의 방송활동도 여전히 지속하는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녀를 유심히 지켜본 그 당시 滿州영화협회의 한 직원은 그녀에게 영화 출연을 제의했고, 이렇게 해서 몇편의 일본영화에서 그녀는 주역을 맡았다. 이 영화들은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고 그녀를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부른 이 영화의 삽입곡들 또한 영화와 함께 크게 유행된다. 그중 (1)蘇州夜曲 같은 곡은 상하이에서 중국어 버전으로, 유럽에서는 [China baby in my arms]란 제목의 영어 버전으로 출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영화들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주로 일본 남자를 사모하는 중국여인이어서, 일본에서는 인기를 얻었을 지 모르지만 중국인에게는 모욕으로 느껴질 부분이 많았다. [상하이여 안녕(再會ba! 上海)]를 시작으로 그녀의 독집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훗날 떵리쥔이 히트시킨 (2)何日君再來 역시 그녀의 독집에 포함된 곡이었다. 이 즈음, 그녀는 청황실의 후손인 가와지마 요시코와 절친한 사이가 되기도 하는데, 전후 두사람의 운명은 명암이 엇갈리는 희비를 맞게 된다. 대동아전쟁 시기에는 일본인의 삶 역시 궁핍하고 처참한 나날이 지속되었는데, 1939년 리샹란의 도쿄 일본극장 공연은 그래서 문화에 기갈이 든 군중들에게 크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다. 극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의 줄이 극장을 일곱바퀴 반이나 되었다는 얘기는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그녀가 이 시기 상하이 바이따이레코드사(百代昌片公司)에서 취입한 곡이 [夜來香]과 [海燕]이다. [夜來香]이 중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 게 되자 중화영화사(中華電影公司)는 그녀를 [萬世流芳]에 출연시켰는데, 이 영화는 그녀가 출연한 최초의 순수 중국영화였던 셈이다. 또한 이 영화의 삽입곡이었던 [夜來香]과 (3)賣糖歌 는 중국의 가요사에 길이 남을 고전이 되었다. 북경에서 인기가 상승하자 그녀는 중국인으로 가장하는 것에 대해 매우 곤혼스러워 했지만, 그녀는 영화의 인기세를 유지하려는 영화사의 권유로 난처하지만 여전히 북경 출신의 가수로 행세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만주시절의 친일영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사죄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1945년 봄과 여름, 상하이에서 개최된 그녀의 독창회 [夜來香幻想曲]은 절정에 오른 그녀의 인기를 보여준 행사였다. 그렇지만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그녀는 곧바로 '전범'으로 피소된다. 요행히도 봉천시절의 그녀의 백러시아 친구가 그녀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북경에 있는 부모로부터 친자확인서를 받아옴으로써, 그녀는 상하이의 법정에서 일본인으로 증명되고, 가까스로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같은 무렵 그녀의 절친한 친구 가와지마 요시코는 북경에서 '전범' 죄로 총살당한다. 리샹란이 일본으로 가기 위해 탄 배에서는 상하이 방송국에서 보내는 가요방송이 나오고 있었는데, 아주 우연하게도 그것은 자기가 부른 [夜來香]이었다. 일본으로 귀국후, 그녀는 야마구치요시코란 본명으로 연예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녀의 [夜來香]은, 영화삽입곡인 (4)東京夜曲 과 함께 다시한번 일본에서 히트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하여, 50년대 초에는 미국의 헐리웃에서 [East is East]에 출연하고 뮤지컬 [샹그릴라]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Limelight]를 찍고 있던 챨리채플린을 알게되어, 귀국후, 영화의 삽입곡인 [Eternally]를 일어와 중국어로 취입한다. 또한 그녀는 홍콩에서 [금병매]를 비롯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1958년 일본의 외교관과 결혼한 그녀는 [도쿄의 휴가]를 찍고 연예계를 은퇴한다. 그리고 1974년 그녀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1992년 은퇴하기까지 외교분야에서 주로 활약하였는데, 전직에 걸맞게 중국과 일본간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자료출처:음악에세이
(1)蘇州夜曲 (2)何日君再來 (3)賣糖歌 4)東京夜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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