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스크랩] 스리랑카 여행 사진

기차니 2007. 9. 29. 10:29
스리랑카 여행 사진




아름다운 캔디 호수, 캔디는 스리랑카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다.




캔디의 불교 순례지, 부처님의 치아를 모신 Temple of the Tooth 사원




Adam's Peak 정상에서 본 일출




부처님의 (혹은 아담) 발자국을 모셨다는 Adam's Peak 산정에 있는 불교 사원




일출 후 한참 동안 Adam's Peak의 삼각형 산 그림자가 산 뒤쪽으로 비친다.




2000m 산허리를 달리는 고물 기차




스리랑카의 주요 수입원인 차 농장 (tea plantations).
차 잎을 따는 일당이 1,500원




스리랑카 남자의 전형적인 복장




버스를 기다리며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이 곳에서 5년 동안 한국에서 일을 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청년을 만났다.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와불. 부처님이 생전에 세 번 스리랑카를 방문했다 한다.




거대한 불교 사원 탑




난공불락의 요새. 산정상에 왕궁이 있다.




산정상 요새 안에 있는 저수지




인도에서 BC 200년경에 가져온 보리수 (나의 스리랑카 얘기 참조)




수나미 피해 현장




피해 복구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동해안 지역은 타밀 타이거 출몰 지역이어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3시간 버스 타고 가는 동안 세 번이나 몸수색을 하는 검문을 받았다.







도로변에는 방어 시설이 요소마다 있었다. 2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내전 상태



스리랑카 얘기
[스크린샷]



친구들 그 동안 안녕하십니까. 3주간의 스리랑카 여행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곧 인도로 다시 돌아가서 인도여행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오늘은 스리랑카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스리랑카 거의 한 가운데에 약 2,200m 높이의 Adam's Peak 산이 있고 그 산정 바위 위에 발자국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도 봤다는 사람은 못 만나봤지만 틀림없이 있다합니다. 이 발자국에 관해서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설은 아담의 발자국이라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올 때에 아담이 밟은 첫 발자국이라 합니다. 이브의 발자국에 대한 얘기가 없는 것이 좀 이상합니다.

두 번째 설은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밟으신 마지막 발자국이라 합니다.

스리랑카에는 Adam's Peak (아담 봉우리) 외에도 Adam's Bridge가 (인도 남단과 스리랑카 사이에 있는 흡사 다리처럼 보이는 산호초 섬들) 있습니다. 작년에 스리랑카 여행기를 하나 읽었는데 그 여행기의 저자가 1970년대에 스리랑카를 여행하면서 카인의 묘를 구경한 얘기를 썼습니다. 스리랑카에 아담의 전설이 있으면 아담과 이브의 아들인 카인에 대한 전설이 있을 법도 하지요. 그러나 카인의 묘 얘기는 근래에 이곳의 어떤 친구가 외국여행객 주머니를 털려고 만든 얘기인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여행 안내서 (Lonely Planet) 아무 데도 그 얘기가 없었고 스리랑카 사람들 여럿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부처님이 밟았다는 전설을 믿는 것 같습니다. 발자국이 있다는 Adam's Peak 산정에는 조그만 절이 있고 그 안에 있는 바위에 발자국이 있다 하는데 보통 순례자에게는 보여주지 않는다 합니다. 이 산정에 오르는데는 약 3시간 정도 걸리는데 보통 새벽 3시에 오르기 시작해서 6시쯤 도착해서 6시 반쯤에 해뜨는 것을 보는 것이 장관입니다. 산정을 오르는 길에는 가로등이 있어서 밤에도 쉽게 오를 수 있고 한 밤중 인에도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어 있습니다.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아마 스리랑카 최고의 불교 순례지 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망인 것은 오를 적에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내려올 때 보니까 등산로 주위가 쓰레기 밭이었습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 쓰레기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 같았습니다.

스리랑카에는 이곳 말고도 불교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 두 군데 더 있습니다. 한 군데는 보리수입니다. 이 나무는 약 200BC 경에 불교 전파에 결정적이 역할을 한 인도의 아소카 왕의 아들이 왕의 명령으로 불교를 스리랑카에 전파하기 위해서 스리랑카에 왔었을 때 인도 보다가야에 있는 부처님이 그 밑에 앉아서 해탈하셨다는 그 나무의 일부를 잘라서 가져와서 심었다는 성스러운 나무입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면서 대부분의 불교 성지는 힌두교 승려의 차지가 되어버리고 인도 보다가야의 보리수도 제대로 가꾸지 않아서인지 없어져 버리고 지금 그곳에 있는 보리수는 스리랑카에 있는 보리수의 일부를 잘라서 다시 심은 나무라 합니다. 그러니 인도 보디가야에 있는 보리수보다도 스리랑카에 있는 보리수가 더 성스러운 나무일수도 있겠습니다. 그곳에 가서 보니 나무를 둘러싸고 사원이 있었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나무 주위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보리수 나뭇잎을 몇 개 주어서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원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나중에 저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군데는 영어로 Temple of the Tooth라고 하는 사원입니다. 이곳에는 부처님의 치아를 모신 곳으로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원은 한국에도 몇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부처님의 치아를 모셨다는 절이 있다는 것은 스리랑카에 와서 처음 들었습니다. 이 치아는 부처님 화장 당시에 누군가가 부처님의 치아 하나를 집어내서 존재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치아가 지난 2천 5백년 동안에 숫한 역경을 치르면서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다가 지금은 이 사원에 모셔져 있다합니다. 물론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치아가 들어있다는 대형 금고 앞을 지나며 "아 저 안에 부처님의 치아가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 부처님의 치아를 파손하려는 사건이 지난 2500년 동안 수없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약 3백년 전에는 포르투칼 사람들이 종교적인 편견을 가지고 이 치아를 탈취해서 불에 태워버렸다는데 그것은 가짜였고 진짜는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하는데 어느 말이 진실인지 의심케 합니다.

스리랑카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천일야화" 라는 책의 주인공인 신드바드가 (Sinbad) 보물과 상아를 발견해서 부자가 된다는 곳이 바로 이곳 스리랑카라 합니다. 유태교의 솔로몬 왕 때도 보물과 spice를 가져온 곳이 이곳이었다 하니 한국보다도 역사가 더 오래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 상인들도 2,000년 전에 왔었다 합니다. Sinbad 당시에는 스리랑카를 "세렌딥 (Serendib)" 이라 불렀는데 영어로 Gem City (보물의 나라?) 라는 뜻이라 합니다. Serendib은 나중에 행운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Serendipity" 의 어원이 되었다 합니다.

스리랑카는 한국에 비하면 참 뒤떨어진 나라입니다. 주 수입원은 봉제업, 티 (tea), 고무, 관광과 중동에 가서 일하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벌어드리는 돈이라 합니다. Tea 밭에서 잎을 따는 여자들의 일당이 약 1,500원 정도이고 은행의 간부 직원의 일당이 약 5만원이라 합니다. 이렇게 한국과는 천양지차이지만 1960대에는 한국보다 훨씬 잘살던 나라였다 합니다. 한국은 참 잘난 나라구나 하는 자부심을 안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스리랑카 얘기는 이만 하겠습니다. 계속 사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계속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
고요함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 스리랑카를 아십니까. 열대성기후의 홍차가 많이 나는 나라 스리랑카는 찬란한 고대 불교문화와 태곳적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7곳이나 있는 보물 같은 나라가 바로 스리랑카이기도 합니다. 인도양?외로이 한 점 떠있는 스리랑카, 홍차 향기가 그윽한 고요와 자비의 나라를 소개합니다.
스리랑카는 전국이 문화유적지라고 할만큼 고대 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유적지는 아누라다푸라와 폴로나루와, 그리고 캔디를 잇는 이른바 문화삼각지대와 시기리야에 몰려 있다. 그중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은 모두 7곳.200m 높이의 커다란 바위산 위에 지어진 왕궁인 ‘시기리야락’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곳. 우선 바위산으로 달려갔다.
●비명과 탄성을 지르는 4시간
수도인 콜롬보에서 시기리야까지는 169㎞. 자동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콜롬보를 빠져나가자 도로가 장난이 아니다. 편도 1차선 국도는 울퉁불퉁해 자갈밭을 달리는 것 같다. 달려오는 자동차와 부딪칠까봐 아슬아슬하다. 그렇게 좁은 도로를 추월하며 질주하는 버스. 앞에 마주 달려 오는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스리랑카의 근거리 교통수단)은 알아서 피해가라는 듯 마구 추월하며 경적을 울려댄다.
이방인의 눈에 도로는 무법천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나름의 룰이 있다고 한다. 이 룰을 모르고 운전대를 잡았다가는 5분도 못가서 사고가 난다고 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야자수와 이름 모를 나무들로 뒤덮여 있는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세계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스리랑카만의 자랑이다. 짐짝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며 어렵게 도착한 시기리야는 천둥과 벼락이 한창이었다. 서둘러 호텔로 들어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아침에 눈을 떴다. 붉은빛을 잔뜩 머금은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카메라를 챙겨 스리랑카의 아침을 담으려고 서둘러 7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눈을 뗄 수 없는 황홀경에 숨이 막혔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칸달라마 호수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지저귀던 새들도 잠깐 숨을 고르는 듯 조용했다. 아니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서니 하나의 점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보다 크기는 작지만 태곳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스리랑카, 그 아름다움을 둘러싸고 있는 고요함. 시간이 멈춘 듯한 나라, 스리랑카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계 제8대 불가사의
누가 높이 200m 바위 위에 궁전을 지었을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궁금증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5세기, 아누라다푸라를 지배하던 다투세나왕의 장남 카샤파는 왕족 출신 어머니를 둔 이복동생 목갈라나와는 달리 평민 출신 어머니를 둔 탓에 동생에게 왕위가 돌아갈 것을 몹시 우려해 아버지를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동생 목갈라나의 보복이 두려웠을까, 아버지를 살해한 후회와 고통 때문이었을까 카샤파는 신들린 사람처럼 시기리아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위에 궁전을 세웠다. 그러나 11년 후 인도에서 군대를 이끌고 온 이복동생과 싸움에서 패한 카샤파는 자살하고 말았다.
젊은 왕자의 광기어린 행동이 후대에 세계 문화유산을 남겼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임에 분명하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거대한 바위산만이 보였다. 올라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저렇게 큰 바위산 위에 궁전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1500년 만에 깨어난 미녀들
정상까지 계단은 1200개. 무더운 날씨에 20분 오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기리야 벽화가 기다리고 있다.
1875년에 우연히 이 바위산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던 영국인에 의해 처음 발견된 ‘시기리야 레이디’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벽화이다.1400년 긴 잠에서 깨어난 미녀들은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처음에는 500명이 넘는 여인들의 그림이 있었지만 지금은 훼손되어 18명밖에 남지 않았다.
2000년이 지났건만 빛나는 색채는 아득한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한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미녀들의 농염한 자태와 신비스러운 표정은 오히려 현대적이라 놀랍기까지 하다.
광기 어린 젊은 왕이 남겨놓은 최고의 걸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니 참 재미있다.
벽화 밑쪽에 있는 ‘미러 월’은 달걀 흰자와 꿀, 석회를 섞어 칠한 다음 표면을 문질러 밝게 빛나는 벽을 만들었다. 신기하게 거울처럼 보이진 않지만 언뜻언뜻 비치는 자신의 형체가 보인다. 조금 더 걷자 드디어 평지가 나온다.
●사자 입속으로 올라가는 궁전
발톱이 날카로운 사자 두 발 사이에 궁전 입구가 있다. 예전에는 다리와 머리가 있어 사자가 크게 입을 벌리고 앉아 있는 형상었다. 바로 여기 때문에 이곳의 이름이 시기리야로 정해졌다. 사자를 의미하는 ‘싱하’와 산을 의미하는 ‘기리얀’이 합쳐진 단어다. 또한 스리랑카의 국기도 칼을 든 사자가 자리잡고 있듯이 스리랑카인의 70%가 넘는 싱할라족은 스스로를 사자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철계단을 통해 올라간다.10여분만 올라가면 정상이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린다.
난간을 잡은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도대체 철계단으로 올라가도 이렇게 힘든데 2000년 전 그들은 어떻게 바위 정상까지 벽돌을 나르고 음식을 나르며 궁전을 만들었을까.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정상에 오르니 4800평 평지에 궁전과 연회장, 수영장 등 나타내는 벽돌들이 가득 박혀 있어 당시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200m 높이의 바위 꼭대기에 수영장이라니. 어이가 없다. 물이 지상에서 공급된다고 하는데 그 방법은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천륜을 어기고 얻어 권력의 두려움에 암벽 꼭대기로 도망쳐 온 카샤파. 불안과 고독에 몸부림쳤을 그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를 안쓰러워했을까. 카샤파가 앉아 무희들의 공연을 감상했다는 돌 평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권력욕 때문에 허망하게 생을 마친 왕의 평상에 앉아보니 욕심에 차서 살고 있는 세상사가 모두 허무해진다.
●이름처럼 예쁜 도시 캔디
몇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싸우고 배신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끊이지 않는 인류를 향해 시기리아락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도다.”
스리랑카가 동방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면 캔디는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난 멋을 가진 곳이다. 완만하게 경사진 지붕을 얹은 전통 건축물들과 아름다운 호수, 푸른 나무와 풀?등으로 인해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꼽힌다. 캔디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북쪽으로 129㎞ 떨어져 있고 해발 465m에 자리잡고 있다. 인도의 잦은 침략에 남쪽으로 도시를 계속 옮기던 싱할라 왕조는 14세기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 무려 350여년 동안 이곳에서 고대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캔디는 스리랑카 사람들에겐 정신적인 고향이자 안식처다. 바로 부처의 치아 사리를 모셔놓은 불치사가 있기 때문이다.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 볼 만하다. 흰옷을 입고 연꽃과 향을 두 손에 든 순례자들의 행렬이 인상적이다.
●자비가 흐르는 황금사원
담불라는 캔디와 아누라다푸라를 연결하는 간선도로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순례자와 관광객들로 붐빈다. 산중턱에 위치한 석굴사원까지 맨발로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담불라의 석굴사원은 커다란 바위를 파내어 만든 5개의 석굴이 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제1석굴 안의 황금빛 와불. 길이 15m의 와불이 열반에 들 자세로 누워 있다. 발바닥에 그려놓은 불꽃 같은 꽃무늬도 강렬하고 현란하다. 나머지 석굴에도 수십개의 불상들과 벽화 등이 있다.
담불라는 180m 높이의 흑갈색 바위산이지만, 석굴안의 불상과 벽화는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래서 담불라를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뜻이 담긴 ‘란 기리’라고도 부른다.
■ 미리 알고가세요
스리랑카는 연 평균 30도에 가까운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온으로 습도가 매우 높다. 햇빛이 강해 선글라스, 자외선차단제와 모자 등은 필수. 현지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3시간 늦다. 화폐는 주로 루피가 쓰이며 미국 1달러가 96루피 정도다. 환전은 공항에서 하는 것이 좋다.
음식은 커리(인도식 카레)와 라이스(안남미)가 주를 이룬다. 밀크라이스라는 전통 음식은 우유와 안남미를 넣고 찐 것으로 우리나라 백설기와 맛이 비슷하다. 석가모니가 열반을 했을 때 제일 먼저 공양을 했?음식이라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직항은 없고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혹시 배낭여행이나 개별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콜롬보에 있는 한국인가이드 정은희(001-94-776-322-589,eunicejung@hotmail.com)씨에게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야여행사에서는 스리랑카 문화유적 탐방 5일 상품을 129만원에 판매한다. 모든 일정에 식사를 포함한 옵션이 포함되어 있다. 일정도 캔디, 시기리아락, 석굴사원과 네곰보 해변 등 스리랑카의 전반을 둘러볼 수 있게 알차게 꾸며졌다.(02)536-4200,kayatour.co.kr
글· 사진 스리랑카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susyya 원글보기
메모 :